논산 효암서원, 강응정 선비의 효심을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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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효암서원, 강응정 선비의 효심을 기리다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 16번지에 위치한 효암서원은 조선시대 문신이자 효심이 깊었던 강응정 선비의 위패를 모신 역사적인 장소다. 논산시 연산에서 가야곡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 잡은 이 서원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커다란 홍살문과 ‘효암서원’ 표지석이 인상적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효암서원은 강응정을 중심으로 양응춘, 김문기, 김성휘, 김필해, 남준 등 여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그들의 덕을 기리고 있다.

서원의 정문인 효의문 옆에는 ‘효자성균생원강응정지려(孝子成均生員姜應貞之閭)’라는 현판이 걸린 정려각이 자리한다. 강응정 선비는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 3년여 동안 시탕과 간호를 하며 천수를 다하도록 정성을 다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5년간 시묘하며 효심을 다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효행은 조정에 알려져 성종 임금이 친필로 정려비를 하사한 바 있다.

효암서원은 원래 강응정을 기리기 위해 두월리의 ‘갈산사’라는 사당에 위패를 모셨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숙종 39년(1713년) 우암 송시열 선생의 주도로 현재 위치에 서원을 재건하며 효암서원으로 개편하였다. 최초 배향된 강응정 외에도 서익, 양응춘, 김문기, 김성휘, 김필태, 남준을 추배하였으며, 고종 4년(1867년)에는 서익이 행림서원으로 옮겨갔다.

효의문을 지나 서원 내부로 들어서면 유생들이 생활하던 동재와 모현재가 자리하고 있다. 동재는 오래된 건물이지만 고풍스럽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유생들이 모여 공부하고 생활하던 당시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강응정 선비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진주 강씨 본관을 지녔으며, 호는 중화재다. 1483년 생원시에 합격한 후 성균관 유생으로 벼슬길에 나갈 수 있었으나 고향에서 어린 후학들에게 소학을 가르쳤다. 김용석, 신종호, 박연, 손효조, 정경조, 권주 등과 함께 향약을 만들어 《소학》을 강론했으며, 이 모임은 ‘소학계’ 또는 ‘효자계’로 불렸다.

강응정 선비의 효심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의 아버지는 참지중추부사를 지내며 부유한 집안이었으나, 마을에 퍼진 병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가세가 기울었고, 어느 겨울날 어머니가 맛있는 국을 원하자 20리를 걸어 국밥을 사오던 중 얼음판에서 미끄러져 국밥을 쏟아버렸다. 슬퍼하던 강응정은 얼음이 얼지 않는 냇가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떼 지어 몰려오는 것을 발견했고, 그 물고기로 끓인 국을 드신 어머니는 병이 완쾌되었다. 이 물고기는 ‘효자고기’라 불리며 지역 주민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병암리 냇가에서는 지금도 ‘을문’이라는 효자고기가 잡힌다고 전해진다. 지역 선비들은 강응정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효암서원을 건립하였으며, 고종 5년(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25년 각계의 도움으로 복원되었다.

서원 경내에는 3칸의 사우, 중앙 신문과 양옆 협문으로 이루어진 삼문, 고직사 등이 있으며, 강응정을 비롯한 여섯 분의 위패가 모셔진 갈산사가 자리한다. 매년 3월과 9월 10일에는 향사가 거행되어 선비들의 덕을 기리고 있다.

효암서원은 조선시대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 교육을 위해 설립된 서원으로, 갑오개혁 이후 교육적 기능은 사라졌으나 역사적 가치와 효행 정신을 계승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덕은로 470번길 18-8에 위치한 효암서원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방문하여 강응정 선비의 효심과 조선시대 선비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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