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밭을 간 심훈의 필경사 이야기

붓으로 밭을 간 심훈의 필경사 이야기
글쓰기와 농사는 얼핏 다르게 보이지만, 그 본질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꾸준한 노력과 성실함이 결국 풍성한 결실을 맺는다는 점입니다. 글쓰기는 단순한 창작 행위를 넘어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 노동이며, 마치 밭을 갈아 고르게 만드는 농사와도 같습니다.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위치한 ‘당진필경사’는 바로 그런 의미를 담은 공간입니다. ‘필경사’란 붓으로 밭을 가는 집, 즉 종이 위에 농사를 짓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소설가이자 언론인, 영화인으로 활동했던 심훈이 1934년 직접 설계해 지은 집으로, 그의 문학적 생가로 불립니다.
필경사로 향하는 길은 솔숲을 지나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이어집니다. 벽돌 벽과 난간 사이로 좁게 열린 하늘 아래 전시실 입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전시실 벽에는 심훈의 얼굴이 간결한 선으로 그려져 있으며, 그의 눈매는 담담한 저항과 예언자적 지성을 담고 있습니다. ‘저항의식과 예언자적 지성, 민중적 생명력을 문학으로 표현하다’라는 문구가 그의 문학 세계를 함축합니다.
전시는 ‘심훈의 예술세계로의 여행’이라는 주제로 그의 일생을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른 청년 시절부터 언론인, 영화인, 소설가로서의 다양한 삶의 면모가 방마다 펼쳐집니다.
전시 중간에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흑백사진이 한옥 창호의 은은한 빛을 배경으로 걸려 있습니다. 심훈은 당시 조선중앙일보 호외를 주워 그 자리에서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시를 급히 써 내려갔는데, 이 시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
‘당진 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구역에서는 『상록수』의 뿌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심훈은 『직녀성』 연재 원고료로 필경사를 지었고, 1935년 5월부터 6월까지 이 집에서 『상록수』를 집필했습니다. 전시실에는 붉은 벽돌을 배경으로 책상 앞에 앉아 원고지에 글을 쓰는 밀랍 인형이 놓여 있어 그의 진지한 문학적 열정을 느끼게 합니다.
기념관에서는 2026년을 맞아 ‘새로운 계몽의 시대, 필경사’라는 주제로 11개월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상록수 체험교실은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상설 운영되며, 봄부터 초여름까지는 ‘상록수 계몽 클래스’가 열려 방문객들이 직접 필경사를 만들어 보고 『상록수』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진의 소박한 맛을 나누는 ‘상록수, 그날의 식탁’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됩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인문학 토크 콘서트와 영상 제작 체험이 더해지고, 가을에는 ‘상록수 소셜 다이닝’과 ‘희망 찾기 RPG, 그날이 오면’이라는 복합문화게임이 이어집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상록수』를 바탕으로 당시 시대를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필경사는 단순한 문학관을 넘어 배움과 나눔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심훈이 상록학원을 통해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했던 뜻을 오늘날에도 이어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자세한 일정과 신청 방법은 당진필경사 기념관 학예연구 체험교육실 또는 기념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시를 마치고 솔숲으로 돌아가는 길, 아침 햇살이 소나무 둥치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잔디밭 곳곳에는 『상록수』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안내판이 놓여 있으며, 그 사이로 오솔길이 이어집니다.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자리한 필경사는 황토 벽과 초가지붕, 나지막한 처마가 고요한 아침 공기 속에 어우러져 있습니다. 앞마당에는 ‘심훈선생고택’이라는 작은 비석이 서 있어 이곳이 그의 문학적 고향임을 알립니다.
심훈의 문학은 흔히 농촌계몽으로 요약되지만, 그 안에는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아는 것이 힘이니 배워야 산다’는 구호를 동혁과 영신이라는 인물의 얼굴로 바꾸어 보여주며, 계몽이란 위에서 아래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흙을 만지는 일임을 소설로 증명했습니다. 그의 시 ‘그날이 오면’에서는 해방의 날을 맞아 자신의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어 앞장서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심훈은 그날을 보지 못한 채 3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상록수』를 책으로 펴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가 과로로 장티푸스에 걸려 1936년 9월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2007년에는 그의 묘가 필경사 경내로 옮겨져 그의 문학적 유산을 기리고 있습니다.
필경사(筆耕舍)는 글자 그대로 ‘붓으로 밭을 가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글쓰기를 농사에 비유하며 땅과 문장에 대한 정직한 태도를 보여준 심훈의 정신이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필경사를 나서며 뒤돌아본 초가지붕 위로 솔숲이 흔들리고, 그 너머로 열린 하늘이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심훈이 심은 나무는 여전히 푸르며, 그의 문학과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당진필경사 위치 및 문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97
기념관 학예연구 체험교육실 및 공식 홈페이지에서 프로그램 안내와 예약이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