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국보 등극 현장

서산 보원사지, 겨울비와 눈 속의 역사 현장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19-1에 위치한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최근 국보로 승격되며 역사적 가치를 다시 한 번 인정받았습니다.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비가 눈으로 바뀌고 이내 녹아 사라진 다음 날 아침, 보원사지 주변 산 능선에는 아직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이 대비는 지나간 시간과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말 없는 증언자, 보원사지의 유적과 유물
보원사지는 오랜 세월 비바람과 눈, 햇살과 바람을 견디며 그 자리를 지켜온 유적입니다. 인간의 삶이 찰나처럼 스쳐 지나가는 동안, 이 돌과 탑들은 시대의 흔적을 묵묵히 간직해 왔습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헬릿 카가 말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처럼, 보원사지의 유물들은 그 대화의 중요한 증언자 역할을 합니다.
백제와 신라, 고려의 흔적이 겹친 절터
보원사지의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 사이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백제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어 백제 사찰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법인국사보승탑비에는 이곳에 승려 1,000여 명이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어, 보원사가 당시 지역을 대표하는 대규모 중심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양한 보물과 국보 오층석탑
보원사지에는 고려 초기 석탑 양식을 대표하는 오층석탑(국보), 약 4톤의 물을 담을 수 있는 대형 석조(보물), 통일신라 석조 조각의 기품을 보여주는 당간지주(보물), 탄문 스님의 사리를 모신 법인국사탑(보물), 용과 구름 문양이 생생한 법인국사탑비(보물) 등 다양한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이들 유물은 보원사의 위상을 짐작하게 합니다.
오층석탑, 삼국과 고려 초기 미감의 조화
보원사지 중심에 우뚝 선 오층석탑은 높이 약 9m로, 하층 기단에는 힘찬 사자상이, 상층 기단에는 팔부신중이 새겨져 있습니다. 통일신라의 힘과 고려 초기의 우아함, 백제 석탑의 미감이 어우러진 이 탑은 삼국과 고려 초기의 조형 감각이 자연스럽게 조화된 걸작입니다. 국보 승격은 이 탑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결과입니다.
절터의 시간과 역사, 그리고 지역의 자부심
보원사지 입구에 걸린 서산 시민과 용현리 주민들의 축하 현수막은 이 국보가 단순한 학술적 성과를 넘어 지역의 자부심임을 보여줍니다. 70cm 간격으로 마주 선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의 장엄함을 상상하게 하며, 대형 석조는 당시 사찰의 규모를 짐작케 합니다. 법인국사탑과 탑비의 섬세한 조각은 고려시대 장인의 뛰어난 기량을 증명합니다.
천 년의 시간과 대화하는 보원사지
보원사는 조선 후기까지 명맥을 유지하다 폐사되었으나, 서로 다른 시대의 유물들이 남아 시간의 층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과거와 현재가 만나며, 말 없는 증언자들이 천 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방문객들은 이 유물들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오래된 시간과 조용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보원사지는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위치해 있으며, 겨울철 눈과 비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역사와 문화의 깊이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