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윤봉길의사기념관 재개관, 애국정신 되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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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윤봉길의사기념관 재개관, 애국정신 되새기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한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새 단장을 마치고 재개관했다. 이 기념관은 윤봉길 의사의 삶과 독립운동 정신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공간으로, 많은 방문객들이 찾고 있다.

기념관은 지난해부터 리모델링을 시작해 올해 봄에 문을 열었으며, 주변에는 윤봉길 의사의 생가와 사당 등이 함께 자리해 연계 관람이 가능하다. 입구에는 방문객을 위한 우산이 비치되어 있어, 무더운 여름철 햇볕을 피하는 데 유용하다.

기념관 로비에는 윤봉길 의사의 흉상과 함께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인 "장부출가생불환"(대장부는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이 전시되어 있다. 이는 1930년대 독립운동을 위해 집을 떠나면서 남긴 말로, 그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전시관은 윤봉길 의사의 독립운동뿐 아니라 그의 일대기와 철학, 문학 활동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190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그는 덕산 공립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오치서숙에서 학문을 이어갔으며, 스승 성주록으로부터 '매헌'이라는 호를 받았다. 이후 야학을 설립하고 문맹퇴치운동과 농촌계몽운동을 펼쳤다.

1930년 중국으로 망명한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에서 일본군 주요 인사들을 겨냥한 홍커우공원 의거를 결행했다. 당시 던진 물통폭탄은 단상에 정확히 떨어져 큰 타격을 입혔으며, 이 사건은 독립운동의 불씨를 크게 지폈다. 의거 후 체포되어 순국한 그의 희생은 오늘날까지 깊은 감동을 준다.

기념관에는 윤봉길 의사의 가족사와 함께 그가 사용했던 유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본명 윤우의로, 농민인 아버지 윤황과 어머니 김원상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문학적 재능도 주목할 만한데, 16세에 시회에서 장원을 차지하는 등 한시를 남겼으며, 문맹퇴치운동에 나선 계기도 소개되어 있다.

특히 문맹퇴치운동은 한 청년이 아버지 묘를 찾지 못하는 사건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일제의 수탈보다 무지가 더 큰 적임을 깨닫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그는 서당과 야학을 열어 농민과 어린이들에게 한글과 천자문을 가르쳤고, 마을 문맹률을 크게 낮추는 성과를 거두었다.

기념관 내에는 의거 당시 사용한 물통폭탄과 윤봉길 의사가 지녔던 안경, 도장 등 유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도 상영된다. 방문객들은 이를 통해 그의 숭고한 희생과 애국정신을 깊이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감성추모관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어록과 함께 그의 삶을 되돌아보는 짧은 영상이 상영되어 방문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다만, 기념관 주변 야외 시설은 무더운 날씨에는 관람이 어려워 실내 전시 위주로 관람하는 것이 권장된다.

재개관한 예산 윤봉길의사기념관은 깔끔한 시설과 풍부한 전시 내용으로 윤봉길 의사의 삶과 애국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뜻깊은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위치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183-5
입장료무료
관람시간09:0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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