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조각에 비친 우리

충남 당진 순성미술관에서 설총식 작가의 개인전 《은유적 현실》이 2026년 10월 31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동물의 생태적 특징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표현한 조각부터 인간의 기원을 상상한 작품, 예술가와 회화의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풀어낸 작업까지 폭넓게 선보인다.
작품마다 소재와 형태는 다르지만, 익숙한 대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관람객은 작품에 담긴 의미를 단번에 해석하기보다 먼저 다가오는 감정과 인상을 따라가며 전시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은유로 바라본 현실
전시 제목인 ‘은유적 현실’은 다소 어렵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을 동물에 빗대어 설명하는 일상의 표현을 떠올리면 의미가 한층 선명해진다. 직접 설명하지 않고도 다른 존재의 특징을 겹쳐 보여줌으로써 현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번 전시에서 동물은 단순한 조각의 소재에 머물지 않는다. 동물의 모습과 행동은 인간관계, 공동체,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조형 언어로 기능한다. 친숙한 형상에서 출발한 시선이 사람과 사회를 향해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미어캣이 전하는 공동체
주요 작품인 《가디언즈》 시리즈는 미어캣을 소재로 한다. 무리를 이루어 주변을 경계하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미어캣의 생태적 특징에 사람과 사회의 이야기를 담았다. 설총식 작가가 오랜 시간 이어온 작업으로, 지킨다는 행위와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입체적인 형상으로 보여준다.
미어캣의 곧게 선 자세와 주변을 살피는 모습에서는 긴장감과 책임감이 함께 드러난다. 가족의 안녕, 어렵게 일군 일터와 관계, 평온한 일상과 자신의 자리처럼 사람마다 지키려는 대상은 다르다. 작품은 그 마음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채 관람객이 각자의 삶을 떠올릴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무리 속에 있다는 것은 보호받는 일이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 역시 가족과 직장, 마을과 여러 공동체 안에서 역할을 맡으며 살아간다.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때로는 누군가의 곁을 지킨다. 이웃이 안부를 살피고 같은 일을 위해 힘을 모으는 지역 공동체의 모습도 미어캣 무리의 형상과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전시장에 놓인 미어캣 조각들은 같은 공간을 바라보는 듯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자세와 표정을 드러낸다. 관람객이 어느 위치에서 작품을 보는지에 따라 무리의 관계와 긴장감도 다르게 읽힌다. 《가디언즈》는 보호와 경계, 연대와 역할이 함께 존재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같은 대화 속 다른 마음
《동병상련 혹은 동상이몽》은 제목부터 관계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작가는 주식에 관해 대화하는 사람들의 겉모습과 서로 다른 속생각에서 작품의 실마리를 얻었다.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도 사람마다 기대와 판단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동병상련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며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상태를 뜻한다. 반면 동상이몽은 함께 행동하면서도 각자 다른 생각을 품는 상황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이 두 상태를 오간다. 서로를 충분히 이해했다고 여기다가도,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제목 가운데 놓인 ‘혹은’은 한쪽만을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같은 관계라도 상황에 따라 공감으로 읽힐 수 있고, 서로 다른 바람이 드러나는 장면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도 상대를 향한 이해와 자신의 기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작품은 이러한 감정의 겹을 단정하지 않고 바라보게 한다.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서 자신이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릴 수 있다.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준비했던 순간, 같은 뜻이라고 생각했으나 뒤늦게 생각의 차이를 확인했던 장면 등이 작품의 제목과 이어진다. 전시장에서는 이처럼 하나의 작품이 저마다 다른 생활의 기억을 불러내는 흐름이 형성된다.
인간의 기원을 향한 상상
전시작 《인류의 기원 추측의 조합》은 남성과 여성의 형상을 결합해 인간의 기원이라는 질문을 조각으로 제시한다. 동물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던 전시의 시선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로 넓어지는 대목이다.
작품 제목에 포함된 ‘추측’과 ‘조합’은 이미 알고 있는 요소를 새롭게 연결하는 상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관람객은 무엇을 근거로 특정한 모습을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는지, 익숙한 구분이 달라졌을 때 왜 낯설다고 느끼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처음에는 결합된 형상의 낯섦이 먼저 눈에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 조합이 던지는 질문으로 관심이 옮겨간다. 첫인상과 이후의 생각이 달라지는 과정 자체가 작품 감상의 한 부분이 된다. 전시는 작품의 뜻을 하나로 정리하기보다 관람객의 생각이 움직이는 과정을 열어둔다.
조각을 만나는 관람법
조각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형태와 비례, 작품 사이의 관계가 달라지는 입체 예술이다. 작품 보호와 관람 동선에 유의하면서 허용된 범위 안에서 시선을 옮기면 정면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특징이 드러난다. 몸을 조금 움직여 작품을 보는 일이 생각의 방향까지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작품의 제목을 확인하기 전에 형상에서 받은 느낌을 먼저 떠올리는 방법도 있다. 이후 제목을 살펴보며 처음 발견한 이야기와 작품명이 만나는 지점, 예상과 달랐던 부분을 비교하면 감상의 폭이 넓어진다. 정답을 찾기보다 작품과 대화를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면 현대 조각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를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작품은 공동체와 관계를 떠올리게 하고, 다른 작품은 인간의 존재와 기원을 질문한다. 서로 다른 소재를 따라가다 보면 ‘은유적 현실’이라는 주제가 여러 형상으로 펼쳐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동물이라는 친숙한 소재는 미술관 관람이 낯선 사람에게도 편안한 출발점이 된다. 전문적인 미술 용어를 먼저 알아야 할 필요 없이 눈앞의 형태와 동물의 특징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나누는 감상
가족 단위 관람객은 같은 작품 앞에서 서로 발견한 내용을 나눌 수 있다. 어린이는 동물의 생김새와 자세, 조각의 형태에 먼저 관심을 보일 수 있고, 어른은 작품에서 관계와 생활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같은 작품을 보고도 서로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는 사실이 전시 감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가디언즈》 앞에서는 무엇을 지키는 모습처럼 보이는지, 《동병상련 혹은 동상이몽》 앞에서는 등장하는 존재들이 같은 생각을 하는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해볼 수 있다. 《인류의 기원 추측의 조합》에서는 익숙한 형상이 새롭게 결합됐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차분히 살펴볼 만하다.
전시장에서는 작품을 빠르게 훑기보다 마음에 남는 조각 한 점을 골라 충분히 바라보는 방식도 유효하다. 처음 눈길을 끈 작품과 관람을 마친 뒤 오래 생각나는 작품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 차이는 관람객이 현재 어떤 관계와 감정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일상 가까이 놓인 미술관
순성미술관은 충남 당진시 순성면 순성로 493-12에 자리한다. 지역 생활권 가까이에서 전시를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민에게는 일상 속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방문객에게는 당진을 새로운 시선으로 살펴보게 한다.
당진의 풍경과 지역 문화를 둘러보는 일정에 미술관 관람을 더하면 여행의 기억도 한층 다채로워진다. 전시장 안에서 마주한 작품과 그 앞에서 오간 대화는 지역의 장소성과 결합해 오래 남을 수 있다. 순성미술관 주차장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 전시명 | 설총식 개인전 《은유적 현실》 |
|---|---|
| 전시 장소 | 순성미술관 |
| 전시 기간 | 2026년 10월 31일까지 |
| 소재지 | 충남 당진시 순성면 순성로 493-12 |
| 주차 | 순성미술관 무료 주차 |
현실을 다르게 보는 시간
《은유적 현실》은 동물의 얼굴과 인간의 형상을 통해 사람의 관계와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전시다. 미어캣의 경계와 연대에서는 누군가를 지키려는 마음을, 같은 대화 속 서로 다른 생각에서는 관계의 복잡함을, 결합된 인간 형상에서는 익숙한 기준을 새롭게 바라보는 상상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장은 작품의 깊은 의미를 먼저 알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눈앞의 형상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인상이 감상의 첫걸음이 된다. 관람객이 자신의 생활과 주변 사람을 떠올리는 순간, 작품과 현실 사이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설총식 작가의 《은유적 현실》은 친숙한 존재를 낯선 각도에서 보여주며 평범한 일상에 질문을 건넨다. 전시를 둘러본 뒤 마음에 남은 작품 한 점을 되짚어보면, 익숙했던 현실을 이전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얻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