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 이끈 이상재

Last Updated :
교육개혁 이끈 이상재

근대 교육의 기틀을 세우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월남 이상재 선생은 학부 학무국장과 외국어학교 교장을 겸임하며 근대적 학제의 기틀을 닦고 교육 개혁을 이끌었다. 학교 운영과 교육 행정을 함께 맡아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일에 힘을 쏟았다.

1895년 4월 1일에는 학부 참서관으로 임명됐다. 이상재 선생이 걸어간 교육의 길은 서양의 제도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데 머물지 않았다. 교육을 통해 백성을 깨우고 나라를 지킬 힘을 키우려는 실천이었다.

사농공상의 질서를 넘어서다

당시 사회에는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신분 질서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상재 선생은 이러한 낡은 틀을 넘어 교육받은 인재를 폭넓게 양성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에게 교육은 개인의 출세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근본이었다. 신분에 얽매인 사회에서 벗어나 백성이 새로운 지식과 의식을 갖추도록 하는 일이 교육 개혁의 중요한 방향이었다.

서구 제도와 조선 정신의 조화

이상재 선생은 서양의 개혁과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조선이 지켜온 도덕과 질서, 정신적 가치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이는 조선의 정신을 지키고 서양의 유용한 제도를 활용한다는 동도서기 신념으로 이어졌다.

낡은 신분제를 깨뜨리고 민권 의식을 강조하는 한편, 사회를 지탱해 온 정신적 가치도 함께 지키고자 했다. 서구 체제의 도입과 조선의 정체성 보존을 함께 추구한 것이다.

백성이 깨어나는 개화

이상재 선생에게 개화는 서양 문물을 그대로 옮겨오는 일이 아니었다. 조선의 정신을 지키면서 백성이 스스로 깨어나는 과정이었다. 근대적 학제를 마련하고 인재를 키우려 했던 교육 개혁도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외국어학교 교장과 학부 학무국장으로서 추진한 교육 활동은 학교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교육을 통해 형성된 민권 의식과 개화의 뜻은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시민의 광장으로 향했다.

교육에서 시민운동으로

교육 개혁의 중심에 섰던 이상재 선생의 시선은 점차 학교 밖의 사회로 넓어졌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제도를 고치는 것과 함께 백성이 현실을 이해하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근대 교육의 기틀을 닦고 백성이 깨어나는 길을 모색한 그의 행보는 이후 독립협회와 시민운동으로 이어진다. 교육으로 인재를 키우려 했던 노력은 만민을 깨우고 시민운동의 불씨를 피우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교육개혁 이끈 이상재
교육개혁 이끈 이상재
교육개혁 이끈 이상재 | 충남진 : https://chungnamzine.com/12184
서울진 부산진 경기진 인천진 대구진 제주진 울산진 강원진 세종진 대전진 전북진 경남진 광주진 충남진 전남진 충북진 경북진 찐잡 모두진
충남진 © chungnamzine.com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modoo.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