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 이어온 서산 누에 농가의 생생한 현장

4대째 이어온 서산 누에 농가의 생생한 현장
충남 서산시 고북면 면학골길에 위치한 윤성원 명인의 누에 농장 '누에가'에서는 4대째 이어져 온 양잠 농가의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다. 9일 오후, 농장에 들어서자 수만 마리의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는 사각사각한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 소리는 바람이나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로 착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살아있는 누에들이 내는 생명의 소리였다.
윤성원 명인은 어린 누에를 키우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공간부터 직접 안내했다. 이곳은 서까래처럼 길게 이어진 나무 구조물이 특징이며, 누에가 알에서 깨어나 뽕잎을 먹으며 성장하는 첫 단계의 공간이다. 누에는 알에서 깨어난 후 네 번 허물을 벗고 고치를 짓는 과정을 거친다. 고치 속에서 번데기가 되고, 시간이 지나면 나방이 되어 다시 알을 낳는 생애 주기를 갖는다.
특히 누에 알은 1년에 한 번, 봄에만 부화한다. 겨울을 지나야 깨어날 준비가 되기 때문에 알은 일정 기간 냉동과 냉장 상태로 관리되며, 사람의 손길로 계절 변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준다. 이처럼 누에의 생애는 자연의 계절과 온도, 그리고 뽕잎의 성장 시기에 맞춰져 있어 사람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신비로운 시간의 흐름을 따른다.
농장 내부는 누에가 민감한 생명체임을 보여주듯, 화학물질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다. 연막 소독이나 홈매트, 방향제, 향수 등 휘발성 화학물질은 누에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에, 농장에서는 파리와 모기가 다소 많아도 이를 감수하며 누에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곳은 단순한 곤충 사육장이 아니라, 섬세한 생태계가 유지되는 공간임을 알 수 있다.
누에를 직접 만져본 경험은 뜻밖의 부드러움으로 다가왔다. 하얗고 길며 통통한 누에는 예상과 달리 말랑하고 연한 촉감을 지녔다. 윤성원 명인은 누에를 "처음부터 사람이 기르도록 만들어진 가축"이라 표현하며, 누에는 쏘거나 도망가지 않고, 나방이 되어도 멀리 날지 못하는 특성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누에는 사람의 손길과 뽕잎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존재다.
윤 명인의 농장은 약 1만 5천 평 규모의 뽕나무밭을 기반으로 하며, 한때는 연간 400상자까지 누에를 키웠으나 현재는 100상자 정도로 규모를 조절해 운영 중이다. 누에 한 상자는 약 2만 마리이며, 양잠은 뽕나무의 성장 시기에 맞춰 1년에 두 차례 진행된다. 농사에서 가장 큰 위협은 습도와 곰팡이로, 젖은 뽕잎을 먹고 병에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 때로는 굶기는 방법을 택한다. 농약과 연막 소독은 누에 농사에 치명적이기에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다.
누에 농사는 단순한 농업을 넘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신뢰를 쌓는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윤 명인은 누에 제품을 대형 유통망에 맡기지 않고, 고객을 '식구'라 부르며 직접 택배로 보내는 방식을 고수한다. 이는 가격 경쟁보다 신뢰와 믿음이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을 반영한다.
탐방 마지막에는 뽕나무밭에서 검붉게 익은 오디를 직접 따 맛보는 시간이 있었다. 오디는 누에에게는 먹이가 되는 뽕잎을 내어주고, 사람에게는 달콤한 열매를 선사하는 나무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오디는 양잠 농가에 있어 덤과 같은 존재지만, 뽕나무가 양잠의 근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윤성원 명인은 어린이 체험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아이들에게 누에를 알리지 않으면 10년 뒤 누에를 아는 세대가 사라지고, 양잠 산업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누에를 직접 보고 만져보는 경험은 단순한 농업을 넘어 문화와 전통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산의 누에 농장에서는 느린 시간 속에서 4대째 이어온 전통 양잠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는 사각사각한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도 이곳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