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대교가 품은 행담도

서해대교 한가운데 자리한 행담도휴게소는 단순히 차를 세우고 쉬어 가는 공간이 아니다. 지금은 식당과 카페, 충전시설을 갖춘 서해안고속도로의 주요 휴게소로 알려졌지만, 그 이전에는 주민들이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던 섬마을이었다.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속한 행담도는 아산만 한가운데 놓인 면적 0.45㎢의 작은 섬이다. 서해대교를 달리다 갈라지는 진입로를 따라가면 섬 위에 조성된 행담도휴게소에 닿는다. 음식을 먹거나 커피를 사고 화장실에 들른 뒤 다시 출발하는 이용객이 많아, 이곳이 섬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밀물과 썰물이 만든 이름
행담이라는 지명에는 서해의 큰 조수간만 차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이 가장 많이 빠졌을 때 뭍에서 섬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는 데서 ‘행’이라는 글자가, 평소에는 바닷물에 잠긴다는 데서 ‘담’이라는 글자가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섬은 걸어서 닿을 수 있는 때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에는 바다에 가로막혔다. 옛 주민들은 행담도를 ‘가치내’라고도 불렀다. 한번 갇히면 쉽게 나오지 못한다는 뜻으로 전해지는 이름이다.
당진시 조사에 따르면 이 일대의 조수간만 차는 9.2m에 달했다. 썰물이 찾아오면 섬 둘레에 넓은 갯벌이 나타났고, 드러난 공간까지 포함한 섬의 넓이는 평소보다 두 배 이상 커졌다. 갯벌에서는 굴과 바지락, 낙지가 났으며 삽교천의 민물이 섞이는 바다에서는 물고기도 잡혔다. 행담도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하루 두 차례 커지고 작아지는 모습을 반복한 셈이다.
역사의 물길에 등장한 섬
행담도가 역사적 사건에 등장한 시점은 1868년이다. 독일 상인 오페르트 일행의 배가 행담도 앞바다에 닻을 내린 뒤, 이들은 작은 배로 옮겨 타고 삽교천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들이 향한 곳은 덕산에 있던 남연군의 묘였다. 남연군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다. 도굴 시도는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조선의 통상 거부 정책이 한층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 행담도에는 주민이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로부터 67년이 지난 1935년에는 가까운 송악 부곡리에 살며 소설 『상록수』를 쓴 심훈이 행담도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훈은 수필 「7월의 바다」에서 멀리서 바라본 행담도를 송아지가 누운 것만 한 외딴섬으로 묘사했다.
그가 남긴 기록에는 굴 껍데기가 붙은 바위와 새우를 말리기 위해 펼쳐 놓은 멍석, 꼴뚰기와 밴댕이에서 풍기는 비린내 등 당시 섬의 풍경이 담겼다. 당시 섬에는 단 한 가구가 살고 있었다.
백여 명이 살았던 어촌
행담도에는 1930년대부터 주민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작은 어촌이 형성됐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24가구, 100명이 넘는 주민이 섬에 터를 잡고 생활했다.
섬의 아이들은 한정초등학교 행담분교에 다녔다. 어른들은 배를 타고 신평면 맷돌포로 건너가 생필품을 구했다. 주민들의 생활은 바닷물의 흐름과 배편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78년에는 행담분교 어린이들을 태우고 소풍을 가던 어선이 썰물에 걸려 갯벌 위에 멈춰 서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기록은 도로와 교량이 놓이기 전 섬 주민들이 바다와 갯벌을 오가며 생활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서해대교가 바꾼 행담도
행담도의 운명을 바꾼 것은 아산만을 가로지르는 길이 7,310m의 서해대교였다. 교량이 행담도를 딛고 바다를 건너도록 건설되면서 오랫동안 섬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차례로 삶의 터전을 떠났다.
1990년대 말까지 남아 있던 주민 20여 명은 섬에 계속 머물기 위해 버틴 것으로 전해진다. 현장 농성이 이어졌고 구속되는 주민도 나왔지만, 결국 주민들은 모두 행담도에서 떠나야 했다.
서해대교는 2000년 완공됐고 행담도휴게소는 2001년 1월 문을 열었다. 현재 섬 전체는 한국도로공사가 소유하고 있다. 과거 주민들이 배를 이용해 오가던 섬은 국가 교통망을 통해 수많은 차량과 사람이 드나드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다리 아래 펼쳐지는 풍경
오늘날 행담도의 풍경은 서해대교 아래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휴게소 주차장에서는 서해대교의 푸른 상판이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모습이 보인다. 물가 쪽에서는 거대한 교각이 바다를 향해 줄지어 서 있고, 멀리 사장교 구간의 주탑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자동차가 끊임없이 오가는 교량 아래로는 밀물과 썰물이 반복된다. 행담도는 서해대교를 받치는 지점인 동시에 다리를 건너는 이용객들이 잠시 멈추는 휴식 공간이 됐다.
행담도휴게소에는 아웃렛과 식당가, 카페, 편의점이 들어서 있다. 화장실로 향하는 동선을 알리는 파란색 안내선도 이어진다. 전기차 충전소와 수소충전소가 마련돼 있으며, 슈퍼차저까지의 거리를 알리는 화살표 옆에는 바다 전망대를 소개하는 작은 사진이 붙어 있다.
휴게소 이용객들은 이곳에서 차량의 연료와 전력을 채우고 식사를 하거나 필요한 물건을 구입한다. 과거 갯벌과 배가 주민들의 이동을 좌우했던 섬이 이제는 고속도로 이동을 지원하는 교통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휴게소 곳곳에 남은 섬의 표정
휴게소 건물은 박공지붕 아래 하얀 기둥을 세운 서양식 외관을 갖추고 있다. 에스컬레이터 위쪽에는 아웃렛 매장이 자리하며, 아래층에는 식당가와 카페, 편의점이 이어진다. 주황색 지붕을 얹은 탑 너머에는 작은 풍차도 서 있다.
당진시는 풍차 주변에 옛 섬마을 주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을 영구 전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휴게소 시설과 함께 과거 행담도에서 이어졌던 주민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내용이다.
건물 뒤편으로 이동하면 주차장과는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벽돌이 깔린 광장 끝에는 긴 난간이 설치돼 있고, 그 너머로 아산만이 펼쳐진다. 맞은편 해안선에는 낮은 산 능선이 여러 겹으로 포개져 보인다.
차양 아래에는 피크닉 테이블이 놓여 있다. 광장 한쪽에는 낡은 농구 골대가 서 있으며, 난간에는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는 장소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사람이 비운 농구 코트 주변에는 갈매기들이 내려앉아 섬 특유의 바닷가 풍경을 만든다.
바다를 바라보는 테라스
위층 테라스에는 나무 데크를 따라 테이블과 의자가 길게 배치돼 있다. 실내에서도 유리창을 통해 바다를 볼 수 있으며, 야외에서는 서해의 바람과 함께 아산만의 넓은 수면을 바라볼 수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행담도가 바다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사실이 한층 분명해진다. 맑은 날에는 서해대교와 바다가 저녁빛에 함께 물드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사진을 촬영하는 방문객도 많다.
행담도휴게소에 머무는 시간은 대체로 짧다. 과거에는 물때에 따라 한번 들어오면 쉽게 빠져나가기 어려운 섬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고속도로 이용객들이 잠시 쉬었다가 각자의 목적지로 떠나는 공간이 됐다.
섬을 떠난 주민들은 20여 년이 지난 뒤 다시 모여 향우회를 만들었다. 주민들은 모두 떠났지만, 행담도에서 이어진 공동체의 기억은 옛 사진과 기록, 주민들의 모임을 통해 남게 됐다.
하루 두 번 반복되는 바다의 시간
서해대교가 놓이고 대규모 휴게소가 들어선 뒤에도 행담도 아래의 밀물과 썰물은 하루 두 차례 오간다. 물이 빠질 때면 섬 주변의 갯벌이 모습을 드러내고, 물이 차오르면 다시 바다가 섬을 감싼다.
행담도는 사람이 살던 어촌에서 서해안고속도로의 대표적인 휴게 공간으로 변했지만, 섬을 둘러싼 바다의 움직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교각과 주차장, 상업시설이 들어선 현재의 모습 뒤에는 갯벌에서 생업을 이어가고 배로 뭍을 오가던 주민들의 시간이 겹쳐 있다.
장소 정보
| 장소 | 행담도휴게소 |
|---|---|
| 소재지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서해안고속도로 275 |
| 주요 시설 | 식당가, 카페, 편의점, 아웃렛, 전기차 충전소, 수소충전소, 바다 전망 공간 |
| 주변 경관 | 서해대교, 아산만, 갯벌, 교각, 바다 전망 테라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