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제시조 지킨 30년 소리꾼의 여정

내포제시조 이수자 안종미, 30년 전통의 무게를 노래하다
지난해 12월 27일, 충남 서산시 문화회관 소공연장 무대 위에는 단출한 조명과 악기, 그리고 한 명의 소리꾼이 자리했다. 충남무형유산 내포제시조 이수자 안종미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이날 ‘완창’ 공연을 통해 내포제시조의 처음부터 끝까지 온몸으로 표현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으며 한 소절 한 소절을 삶처럼 이어가는 그녀의 모습에 관객들은 숨죽여 집중했고, 일부는 눈을 감거나 손을 꼭 쥐는 등 깊은 감동을 받았다.
소리꾼 안종미의 진솔한 이야기
한 달 후, 서산의 한 작은 카페에서 만난 안종미 씨는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조용히 웃으며 "이제야 제 인생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행사 사회도 능숙하게 진행하는 소리꾼으로 지역 축제나 경로잔치에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행복은 크지 않다고 전했다.
특히 한 할머니가 행사 때마다 그녀의 손에 천 원을 쥐어주며 고마움을 표현한 일화는 그녀에게 큰 의미로 남아 있다. 경로잔치에서 분장실의 고성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이어가는 순간, 그녀는 "프로는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넘는 것"임을 깨달았다며 무대가 늘 자신의 태도를 묻는 자리임을 강조했다.
차 안에서 시작된 연습과 성장
안종미 씨의 연습 환경은 늘 부족했다. 집에서는 눈치를 봐야 했고, 가족들은 그녀가 장구를 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래서 그녀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조수석을 눕혀 혼자 음악을 틀고 따라 부르며 연습했다. 한두 시간이 금세 지나갔고, 들판 팔각정에서 율동 연습도 했다. 대학원 시절에는 볼펜을 물고 노래하는 훈련도 받았는데, 사람들 앞에서 침을 흘리며 노래하는 것이 창피했지만 그 훈련이 소리를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어린 시절은 녹록지 않았다. 새벽마다 술을 사러 가야 했고, 굶는 날도 많았다. 아버지의 알코올 문제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목표였던 그녀에게 어머니가 부르던 민요는 큰 위안이 되었다. 30회가 넘는 대회에 도전하며 떨어지고 울었지만 다시 일어섰고, 지금도 심사위원 앞에 서면 떨린다고 했다.
제자 양성과 봉사 활동
현재 안종미 씨는 제자를 가르치고 있다. 가르치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말하며 학생 수가 적고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마음이 상할 때도 많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20년 넘게 요양원 봉사공연도 이어왔으며, 제자들과 함께 이동하며 비용 대부분을 자비로 충당했다. 최근 요양원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을 때는 뿌듯함을 느꼈지만, 보람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내포제시조 전통을 지키는 어려움과 희망
안종미 씨는 내포제시조를 배우려는 사람이 매우 적어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조는 단기간에 익히기 어려워 최소 4~5년은 꾸준히 매달려야 무대에 설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만큼 버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시간과 비용, 인내심이 요구되지만 돌아오는 것은 많지 않다. 설 무대가 부족한 현실은 가장 큰 좌절이다.
그녀는 개인의 열정만으로 전통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다며, 최소한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라도 시조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며, 요즘 아이들 중에는 아리랑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시조 대중화가 쉽지 않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는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과 다짐
안종미 씨는 앞으로 대통령상 도전도 생각하고 있으며, 제자들을 더 잘 키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카페를 나서며 "아직 멀었다"고 말한 그녀의 다짐은 차 안에서 시작된 연습이 이제는 전통을 지키는 책임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천천히, 흔들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사다리를 오르는 그녀의 여정은 계속된다.
